191005. 이집트 여행 #6. 3일차 오전. 침대기차, 룩소르역
#6_1. 화장실에 갇힌 남자.
새벽 5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구글 맵을 켜고 현재 위치를 찾아본다. 연착이면 어쩌지? 택시를 타고 지성을 찾아가야 된다고?
연착은 당연하다며 호언장담하던(?) 지성의 말과 다르게 지도에서 룩소르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연착되어도 7시 이전에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
긴장이 풀려서일까, 요 며칠 소식이 없던 배에서 연락이 온다. J가 깰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을 나왔다.
객실 내에 화장실은 따로 없기 때문에 옆칸의 공용화장실로 들어갔다. 걸쇠는 고장 난 것 같고, 문 아래쪽도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발로 몇 번 차서 문을 닫고 이 새벽에 올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손잡이를 붙잡고 거사를 치렀다.
속을 비워내고 문을 잡아당기는데, 당겨지질 않는다.
힘껏 당겨봐도 위쪽만 조금 움직이고 열리질 않는다.
싸늘하다. 식은땀이 난다.
일단 급하게 J에게 보이스톡을 걸어봤다. 기차 소리 때문에 못 들으면 어쩌지, 무음이면 어쩌지, 진동이면 어쩌지.
자기 전에 데이터가 오락가락한다고 했던 J의 말도 기억이 났다.
W(31) 이집트 기차에서 똥 싸다 갇혀서 여기 잠들다......
"야 여기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J도 내가 나가고 얼마 안 돼서 알람을 듣고 일어났고, 이놈이 어딜 갔나 싶어서 카톡을 봤더니 미친 듯이 구조요청 보이스톡이 와서 구하러 왔다고 했다. 정말 못 나오는 줄 알았다.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 룩소르에 내릴 준비를 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아침을 가져다주었다.
[J]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갔는지 감이 안 오길래 카톡 메시지는 남기고 갔겠지 하고
무심코 핸드폰을 보니 다급해보이는 보이스톡이 하나 와 있었음
다시 걸어보니 인터넷 사정이 영 좋지 않아 보이스톡은 못함
결국 여러 번 보톡 시도 끝에 통화는 실패하고 카톡 메시지로 상황 파악해 구출
기차는 연착 안 하고 잘 왔는데 못 내릴뻔
#6_2. 살라남바완.
어젯밤 기차를 타면서 룩소르까지 간다고 했더니 승무원이 와서 룩소르에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도착시간은 새벽 6시 15분. 05:55가 정시 도착이었으니 이 정도면 거의 정시에 도착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아무래도 자기 전에 날린 기도가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다.
룩소르에선 투어를 하기로 했고, 미리 한국에서 룩소르 원데이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 "지성"과는 어제 통화한 것처럼 7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시간은 좀 남은 셈이다.
룩소르 역에서 나가자 누가 봐도 관광객 행색인 우리 둘을 삐끼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헬로 마이 프렌드! 어디까지 가니, 숙소는 잡았니?"
계속 여기 있다간 남은 시간 내내 어그로가 끌릴 것 같아 다시 역 안으로 피신했다.
[J]
이집트가 중동 국가 중에서는 그래도 치안 상황이 양호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테러" 가 발생한 적이 몇 번 있다보니
각 기차역/지하철역마다 X레이 포함한 검문이 있다.
근데 꼼꼼하게 하는 것 같지는 않음, X레이 통과시키려면 짐 풀고 가방 풀고..
귀찮기는 오질라게 귀찮은데 효과가 있으려나
"과장님 이집트 가셔서 현지인이랑 뭔가 문제 있으면 일단 쌀라 남바완 하세요 쌀라 남바완"
리버풀 팬인 사무실 후배가 이집트에서 문제 생겼을 때 꿀팁이라며 알려준 그 말이 불현듯 기억났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역의 카페테리아 기둥에 래핑까지 되어있을 정도면 진짜 국민 영웅인가 보다.
J와 헛소리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새 7시.
약속 시간이 되어 역 앞으로 나가자 저 멀리서 잘생기고 키가 큰 이집션이 휘적휘적 다가온다.
그 유명한 룩소르의 "지성"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