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4_제주 당일치기~제주 올레길 17코스
갑자기 제주도
고민이 많던 새벽, 이대로 있다간 또다시 집에서 궁상만 떨 것 같아 당일치기 제주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여유롭게 나섰다가 출발 비행기를 놓치는 사소한 이슈가 있었지만, 어찌저찌 급하게 한시간 뒤의 비행기를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잡을 수 있었다.
얼마만의 제주도인가, 갑작스런 여행이지만 설레이는건 어쩔 수 없다.
아,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였을까,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세상에 비행기가 어찌나 덜컹거리고 떨리던지. 설렘은 출발과 동시에 날아가고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찬 비행이었다.
비행기가 마치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 마냥 흔들거리고, 중간중간 예상하지 못한 방지턱을 만난 듯 하늘에서 덜컥 튕기기까지 해서 점점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튼 도착
짐이래봐야 작은 배낭 하나뿐이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출구까지 '나 제주도 왔소-' 할만한 포토존도 많아서 기분이 금새 나아졌다.
돌고 돌아 제주올레길에 서다
작년 가을, 10년 근속휴가로 10일의 연차가 생겼었다.
두 번의 주말까지 포함하면 거의 2주의 시간이 주어졌다.
장기 휴가가 언제 또 돌아올지 모르니, 어디 멀리라도 다녀올 요량으로 알아보다 결국 꽂힌 것이 [순례자의 길]이었다.
가장 많이 간다고 알려진 [프랑스 길]은 30~35일의 일정이니 불가능.
대신 나 같은 직장인(?)을 위한 짧은(??) 코스인 10~12일의 [포르투갈 길]이 있더라.
우스갯소리로 프랑스 길에는 그렇게 퇴사자들이 많고, 포르투갈 길에는 휴가자가 많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하지만 장기근속휴가는 회사에 의해 반려당해 결국 순례자의 길은 가지 못하게 됐고
대신이라면 대신이랄까 언젠가는 가까운 제주 올레길을 돌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새벽에 생각이 닿아 부랴부랴 제주 올레패스포트도 구매, 공항에서 바로 수령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오늘은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17코스를 돌아보기로 한다.
짧은 코스이지만 북쪽을 따라 용두암도 보고, 동문시장까지 닿는 알찬 코스다.
제주공항을 나오면 정식 코스는 아니지만, 제주공항을 기점으로 17코스 시작점까지 가는 [공항올레]라는 길이 있다.
제주공항을 왼쪽에 끼고 크게 돌아 북쪽 어영소공원까지 가는 코스인데...
정식 올레길도 아닐뿐더러, 사진처럼 뷰 역시 살벌하다.
평소라면 볼 일이 없는 화물청사도 보고, 쉴새없이 비행기들이 날아오르는 활주로도 볼 수 있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이 길로 시작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리고 싶다.
다만 [공항올레]는 정말 재미도 없고 뷰도 별로인 루트였지만 이 가게가 루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처음 먹어보지만 익숙한 그런 맛.
공항 인근에 있으니 다음에 제주도를 온다면 [본날]의 접짝뼈국으로 여행을 시작하거나 마무리 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공항길을 계속 걸어간다.
활주로를 끼고 크게 돌아가다보니 살벌한 철조망 뷰는 계속 된다.
체감상 10분에 한 번씩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공항길의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땐, 인도조차 없는 차도를 가로질러야했다.
의심스러울 때마다 한 번씩 발견되는 두 갈래의 리본만이 이 길이 올레길이라는 증표가 되었다.
한 시간정도를 걸어서 드디어 17길의 중간 지점인 어영소 공원에 도착했다.
미리 구매한 올레길 패스포트(₩20,000)에 스탬프를 찍고 이제 진짜 올레길 트레킹을 시작한다.
* 모바일 올레패스 관련
올레패스 어플이 있어 올레길의 정확한 GPS 정보를 수신하고 맞게 걷고 있는지 비교할 수 있었다.
다만, 실물 올레패스를 구매하면 모바일 올레패스에서도 스탬프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줄 알았는데, 이건 또 별도 구매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느 한 쪽을 구매했으면 할인 쿠폰이라도 주면 좋았을텐데 이 점은 아쉬웠다.
파도 치는 바다를 보며 쭉쭉 걸어나간다.
파도치는 바다.. 파도..치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벽을 밀고 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무지막지한 역풍이 불어왔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갔다면 등을 밀어주는 고마운 바람이었겠지만, 이미 이쪽 방향으로 가기로 한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어쨌건 바람을 뚫고 전진한다.
가는 길 중간중간 내가 맞게 가고 있나 의심이 들게 했던 노란색과 회색의 리본
나중에 찾아보니 [성안올레] 라고 제주 옛 도심을 따라 걷는 또 다른 올레길이라고 한다.
올레길이 도심으로 접어들자 리본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맞게 걷고 있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길 잠깐 벗어난다고 내가 걷는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닥에 파란색 선을 따라 걷거나 애매할 때 한 번씩 등장하는 리본을 따라 걸어갔고, 그래도 정 햇갈릴 땐 올레패스 어플을 참고했다.
갈라지는 길에선 이렇게 파란색/주황색 화살표로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파란색이 정방향, 주황색이 역방향으로 진행 방향을 알려준다.
도심을 걷는건 지루할 줄 알았는데 코스 중에 제주목관아가 있어 한 번 둘러보고 나올 수 있었다.
칠성로 쇼핑타운도 가로질러 가는데, 연 곳보다 닫은 곳이 많아 썰렁한 분위기였다.
드디어 17코스의 종점이자 18코스의 시작점인 [김만덕 기념관]에 도착했다.
도장을 찍고 기념관 내부에 있는 공식안내소에 들려 올레길 마그넷을 하나 구입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서 안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콘센트를 찾아 핸드폰을 충전하며 잠시 쉬었다가 출발하기로 한다.
걷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까진 여유가 있어 동문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예전에 왔을 때보다 야시장이 활성화 되어 많은 부스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들고 다니면서 먹기엔 좀 헤비한 음식들이라 밀크 아이스크림만 한 컵 사들고 시장을 구경했다.
시장을 구경하고 나선 굳이 읽겠다고 들고온 책을 읽기 위해 스타벅스에 앉았다.
그래도 제주도에 왔는데 귤 음료는 하나 먹어야하지 않을까 싶어 음료는 한라봉 블렌디드로 주문.
당일치기였냐는 친구들의 경악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산티아고 순례길 예행 연습이라기엔 짧디 짧은 반나절의 여행이지만 걷는 동안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참 좋았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선 역시 몸을 움직여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