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191003-191013 이집트

#6_1. 화장실에 갇힌 남자.

 

새벽 5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구글 맵을 켜고 현재 위치를 찾아본다. 연착이면 어쩌지? 택시를 타고 지성을 찾아가야 된다고?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연착은 당연하다며 호언장담하던(?) 지성의 말과 다르게 지도에서 룩소르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연착되어도 7시 이전에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

 

긴장이 풀려서일까, 요 며칠 소식이 없던 배에서 연락이 온다. J가 깰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을 나왔다.

객실 내에 화장실은 따로 없기 때문에 옆칸의 공용화장실로 들어갔다. 걸쇠는 고장 난 것 같고, 문 아래쪽도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발로 몇 번 차서 문을 닫고 이 새벽에 올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손잡이를 붙잡고 거사를 치렀다.

 

속을 비워내고 문을 잡아당기는데, 당겨지질 않는다.

힘껏 당겨봐도 위쪽만 조금 움직이고 열리질 않는다.

싸늘하다.  식은땀이 난다. 

 

실제상황

일단 급하게 J에게 보이스톡을 걸어봤다. 기차 소리 때문에 못 들으면 어쩌지, 무음이면 어쩌지, 진동이면 어쩌지.

자기 전에 데이터가 오락가락한다고 했던 J의 말도 기억이 났다.

W(31) 이집트 기차에서 똥 싸다 갇혀서 여기 잠들다......

 

"야 여기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조된 나

다행히 J도 내가 나가고 얼마 안 돼서 알람을 듣고 일어났고, 이놈이 어딜 갔나 싶어서 카톡을 봤더니 미친 듯이 구조요청 보이스톡이 와서 구하러 왔다고 했다. 정말 못 나오는 줄 알았다.

 

속절 없이 평화롭던 객실 복도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 룩소르에 내릴 준비를 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아침을 가져다주었다. 

 

여행 내내 만난 딸기잼, 치즈, 꿀 그리고 빵

[J]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갔는지 감이 안 오길래 카톡 메시지는 남기고 갔겠지 하고 
무심코 핸드폰을 보니 다급해보이는 보이스톡이 하나 와 있었음

다시 걸어보니 인터넷 사정이 영 좋지 않아 보이스톡은 못함

결국 여러 번 보톡 시도 끝에 통화는 실패하고 카톡 메시지로 상황 파악해 구출
기차는 연착 안 하고 잘 왔는데 못 내릴뻔 

 

 

#6_2. 살라남바완.

 

 

어느새 밝아진 바깥

어젯밤 기차를 타면서 룩소르까지 간다고 했더니 승무원이 와서 룩소르에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도착시간은 새벽 6시 15분. 05:55가 정시 도착이었으니 이 정도면 거의 정시에 도착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아무래도 자기 전에 날린 기도가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다.

 

여기서 내려

 

룩소르에 도착을~~~했습니다!

룩소르에선 투어를 하기로 했고, 미리 한국에서 룩소르 원데이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 "지성"과는 어제 통화한 것처럼 7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시간은 좀 남은 셈이다.

 

룩소르 역에서 나가자 누가 봐도 관광객 행색인 우리 둘을 삐끼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헬로 마이 프렌드! 어디까지 가니, 숙소는 잡았니?"

계속 여기 있다간 남은 시간 내내 어그로가 끌릴 것 같아 다시 역 안으로 피신했다.

 

룩소르 역사 내부

[J]

이집트가 중동 국가 중에서는 그래도 치안 상황이 양호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테러" 가 발생한 적이 몇 번 있다보니
각 기차역/지하철역마다 X레이 포함한 검문이 있다.

 

근데 꼼꼼하게 하는 것 같지는 않음, X레이 통과시키려면 짐 풀고 가방 풀고..

귀찮기는 오질라게 귀찮은데 효과가 있으려나

 

역에 있던 카페테리아

 

살라 남바완 살라 남바완

"과장님 이집트 가셔서 현지인이랑 뭔가 문제 있으면 일단 쌀라 남바완 하세요 쌀라 남바완"

리버풀 팬인 사무실 후배가 이집트에서 문제 생겼을 때 꿀팁이라며 알려준 그 말이 불현듯 기억났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역의 카페테리아 기둥에 래핑까지 되어있을 정도면 진짜 국민 영웅인가 보다.

 

J와 헛소리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새 7시.

약속 시간이 되어 역 앞으로 나가자 저 멀리서 잘생기고 키가 큰 이집션이 휘적휘적 다가온다.

그 유명한 룩소르의 "지성"을 만났다.

#5_1. 고요한 모스크 오브 이븐 툴룬.

 

 

낯선 곳에 우리를 던져두고 가는 뒷모습

카이로 시내로 들어오자 좀 막히는 듯했고, 30분 정도를 달려 모스크에 도착했다.

정상 가격은 21파운드였지만 피크타임이라 2배를 받아 42파운드를 계산했다.

기사와 가격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를 손짓 발짓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우버.

카이로에서 여행한다면 우버는 절대 필수다. 진짜로. 정말로.

 

아무튼 이게 입구

별다른 안내 표지판도 없지만 구글 지도를 보면 맞게 도착은 한 것 같다. 입구라고 붙어있는 곳 역시 없지만 검색대가 있는 걸 보니 저게 입구인가 하고 다가가니 검색대를 통과하라는 이집션들.

간단한 검색을 마치고 입구를 통과하자 저쪽에서 노인이 이리 오라며 손짓한다.

내부에선 무조건 차야한다며 발싸개를 써야 한단다. 천 주머니나 비닐 중에 고르라는데 재활용할 것도 아니니 비닐을 고르자 아뿔싸, 또 박시시를 요구한다. 이번에는 발싸개 값과 신전을 위한 기부란다.

내지 않으면 붙잡고 보내주지 않을 기세라 발싸개 값으로 5, 기부금으로 10을 냈다. 기부금이 너무 작은 것 아니냐며 구시렁거리는데 무시하고 뒤돌아섰다.

 

고요하고 뜨거운 내부

넓은 안 뜰을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던 때라 우선은 회랑을 돌아보기로 했다.

 

긴 회랑

긴 복도에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외부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복도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본다.

 

조용히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정화되는 기분

 

떼어오고 싶었던 화려한 문양들

줄지어 이어진 아치에는 서로 다른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관리의 탓인지 세월의 탓인지 완전히 지워진 곳도 있고, 아직 빼곡하게 들어찬 곳도 있다.

9세기에 지어진 모스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남아있는 것 또한 기적에 가깝다.

 

가운데에 있던 의문의 건물

안 뜰 가운데 있는 건물도 가본다.

 

부서진 플라스틱 의자만 덩그러니

 

저 멀리 보이는 미나렛

 

올라가면 카이로 시내가 보인다던데....

4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태양빛에 차마 저 멀리 보이는 미나렛은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두어 바퀴 둘러본 후 다시 길을 나섰다.

 

물까봐 무서웠다

입구엔 들개들이 서성인다.

놀랍게도 여기가 카이로 최고(最古)의 모스크 입구가 맞다.

 

 

#5_2. 광란의 툭툭이.

 

 

거창했던 원래 계획

구경을 마쳤으니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다음 목표는 파란색 타일이 아름답다는 블루 모스크.

"걸어서" 모스크 오브 이븐 툴룬에서 출발 > 블루 모스크를 들러 구경 > 길을 쭉 따라 올라가 즈웰라 문 도착이라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으나, 여행 첫날+더위+생각보다 무거운 짐 콤보로 포기하고 우리 친구 우버를 다시 한번 타기로 했다.

 

누가 봐도 동양인 관광객

하지만 짧은 거리 탓인지, 기사가 없는 건지 우버는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간신히 잡은 우버는 근처까지 와서 주위를 계속 빙빙 돌기만 했고(취소 수수료를 뜯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취소 후 다시 잡은 우버는 우리를 지나쳐(ㅋㅋㅋ) 다른 골목으로 가버렸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이집트 여행 통틀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야 이럴 거면 걍 툭툭이 잡아서 타고 가자"

 

계속 잡히지도 않고 지나가는 우버에 지치기도 했고, 우릴 놀리듯 연달아서 지나가는 빈 툭툭이들에 혹한 것도 있었다.

결정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앞에 나타난 툭툭이를 타고 기사에게 구글 지도와 가이드북을 보여주며 블루 모스크를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기사, 심상치 않다.

탄다니까 태우긴 했는데 이 동양인들이 뭐라는 건지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 더니, 지나가던 다른 이집션을 붙잡고 얘네 뭐라고 하는 거냐고 물어본다. 붙잡힌 이집션 아저씨는 우리 설명을 듣고는 다시 뭐라 뭐라 뭐라 기사에게 전해줬다.

 

"아 오케이 마이 프렌드"

자신 있게 출발한 툭툭이는 거침없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타본 툭툭이, 최대 볼륨으로 터지는 묘한 이집트 노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이게 낭만이지...라고 생각했다.

 

오빠 달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여자가 지나가면 전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질 않나,

좁디좁은 시장 골목을 가로지르더니 중간에 멈춰서 담배를 사질 않나,

구글 지도를 켜놓은 우릴 보더니 자기가 지도보다 정확하다며 소리를 지르질 않나(놀랍게도 아랍어인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 이건 낭만이 아닌데

 

광란의 질주가 끝나고 간신히 도착한 곳은 아무리 봐도 블루 모스크가 아니라 즈웰라 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데려다 달라고 하기엔 도저히 이놈 뒤에 타고 갈 자신이 없어서 그냥 땡큐 땡큐 하고 내렸다.

그러자 손가락 두 개를 펴며 손을 벌리는 이 청년.

아뿔싸, 타기 전에 가격 얘기를 안 했다.

(솔직히 쫄았던) 우리는 20파운드를 또 뜯겼다.

 

[J]

이게 영상으로 보면 안전운전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이게 어떻게 사고 안나냐 싶을 정도

이 운전자 친구의 약 빤 것 같은 운전실력 (+정신상태)이면
중간중간 피우던 것이 대마가 아닐까 싶다

 

 

#5_3.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2.

 

 

ㅎㅇ

우여곡절 끝에 즈웰라 문에 도착하긴 했는데... 여기도 유명하긴 하지만 가이드북에서 봤던 하얗고 새파란색의 타일이 아른거려 나는 한번 더 J에게 걸어서 가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멀진 않으니 한번 가보자고.

그런 우리에게 웬 노인이 말을 걸어온다.

 

"헬로 마이 프렌드! 어딜 가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린 알아서 갈 길 갈 거다" 

"(버럭) 너희가 많이 속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모든 이집션이 나쁜 건 아니야, 나는 굿 이집션이라고!"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여기 즈웰라 문에서 일하는 기술자(technician)야. 너흰 어딜 가려는 거니?"

"어...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정말 아름답지, 여기서 가까운데 내가 데려다줄게"

"아냐 그냥 우리가 알아서 갈 거다. 길 다 안다"

"오... 너희 정말 많이 당했구나 하지만 진짜 걱정 마, 나는 여기서 일하는 기술자고, 굿 이집션이야. 내가 데려다줄게"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앞장서는 이집션.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은데 지가 데려다준다는데 어쩌겠냐며 일단 따라가기로 한다.

 

"마이 프렌드, 여긴 학교고 저긴 뭐하는 데고, ##$$%#@#$@#$%^&"

가는 동안 보이는 건물들을 설명해주는 자칭 굿 이집션 기술자와 함께 블루 모스크에 도착했다.

 

당황해서 사진도 못찍었다. 떙스 투 구글

"마이 프렌드, 너희 학생증 있니? 여긴 학생증 받으면 학생 요금 100파운드(!)로 할인받을 수 있어"

"매표소도 없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여기 입장료 없는 거 안다"

"너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가 여기 입장료 없다고 했어"

"가이드 북이랑 다 보고 왔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 가이드북이 오래돼서 잘못된 거다. 내가 여기 담당자 데려올게 기다려"

그러더니 저 구석에 누워서 자고 있던 다른 이집션을 툭툭 쳐서 깨우기 시작하는 이집트 기술자.

누가 봐도 사기꾼의 모습에 우린 내부 구경도 못하고 급하게 발길을 돌려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잊지 말자,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J]

이것이 더블샷
툭툭이 친구한테 사기당하고 이 할아버지한테 사기당하고

이집트에서는 나이가 어리던 많던 상관없이 나한테 말 걸면 사기꾼이다

 

 

#5_4.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길. 그 와중에 물도 하나 샀다

사기꾼한테 이끌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즈웰라 문으로 돌아간다.

그 와중에 슈퍼에 들어가 생수도 한통 사는 용기까지. 

 

ㅎㅇ 또왔니

다시 즈웰라 문까지 오긴 했는데, 모스크 내부를 보자니 안에서 한창 기도 중인 것 같았다.

우리는 한참을 서성이다 배가 고프니 밥이라도 먹으러 가기로 결정하고 구글에 급하게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뭐라는건지 설명하시오(3점)

여차저차 평점이 나쁘지 않은 가게를 찾고 구글신께서 알려주는데로 길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건지 가는 길은 막혀있고, 돌아가는 길은 공사 중이고, 어떤 곳은 경찰이 막고 있고...

사기꾼을 만나고 길까지 잃어버리는 연속 콤보에 패닉이 와버린 우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람세스 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시간은 16시.. 기차 시간은 20시... 될 대로 되라지

 

치열했던(?) 그날의 동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우버를 불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금방 우버가 잡혔고 15분 정도를 달려 람세스 역에 도착했다. 

 

 

#5_5. 람세스 역.

 

 

크고 화려한 람세스역

람세스 역 내부는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가는 야간 침대열차는 한국에서 미리 예매를 해놨기 때문에 따로 표를 구입할 필요는 없었지만, 출발 시간은 아직 3시간은 더 남았기 때문에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아야 했다.

 

2층의 카페테리아

내부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큰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일단 여기서 뭐라도 먹고 가기로 결정했다.

 

뭔가 많이 먹음

배가 고파서

 

많이 먹음 뭔가

많이 시켰다.

 

Hot cide와 Seasonal Juice

 

3시간 동안 죽치고 먹은 것들

 

각각의 가격은 저렴했었는데 이렇게 시키고 나니 260파운드가 넘었다.

그래도 알음알음 쌓여있던 여행 첫 날의 긴장감이 싹 날아가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신 이집션 사기꾼들에게 속지 말자며 우리끼리 다짐하고, 받아온 한게임 맞고(!)를 하며 침대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J]

사실 카톡에다 먹은 메뉴랑 가격 써놓은게 
음식점에서도 사기 당할까봐 나중에 계산서랑 대조해보기 위해 기록해둠ㅋㅋㅋㅋㅋㅋ

실제로 대조해보니 계산서랑 달랐는데 따져보니 결론은 팁 포함!

 

1 EGP (이집트파운드) = 75원 

 

람세스 기차역 플랫폼

기차 시간이 다 되어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우리가 먼저 말을 건) 청소 직원의 도움으로 우리가 탈 기차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 침대 기차가 비슷한 시간에 차례대로 두 개가 출발한다. 우리가 타는 건 두 번째 열차였는데, 하마터면 앞에 걸 탈 뻔했다.

** 침대 기차는 외국인 전용인지 기차 입구를 직원이 막아서고 있다. 애매하다 싶으면 직원이 이집션들은 타지 못하게 제지하는 게 침대 기차라고 봐도 될 듯.

 

 

낭만 그 자체, 침대기차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가는 건 총 3가지 방법이 있다.

1. 비행기

2. 침대 기차

3. 일반 기차

차례대로 비용은 저렴해지나 시간은 오래 걸린다.

늙고 병든 직장인 2명은 침대 기차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침대 기차를 타보겠나, 이 또한 낭만이었다.

 

출발 후 조금 기다리니 직원이 와서 1층 의자를 침대로 바꿔주고,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침대기차 저녁식사

예매할 때 옵션에서 Beef, Chicken 고르는 게 있더라니 식사 메인 메뉴를 고르는 거였나 보다.

내가 시킨 Beef는 묘하게 유사 갈비찜 맛이 났다. 나쁘지 않았다.

 

카이로를 20시에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 룩소르에 새벽 6시에 도착한다.

자기 전, 미리 예약한 룩소르 투어 가이드 "지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W님, 어디 호텔에서 출발하시죠?"

"저희는 카이로에서 지금 침대 기차 타고 가고 있습니다. 도착시간 6시라고 나오더라구요"

"아ㅎㅎㅎ 그런데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연착이 당연합니다"

"정시 도착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구요, 예전에 두 시간 정도 늦으셨던 분도 계셨어요"

"제가 7시까지 카이로 역으로 가긴 할 텐데, 혹시 연착돼서 늦으시면 투어 장소까진 알아서 오셔야 합니다"

"제가 정시 도착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드리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유창한 한국어로 굉장히 무서운 말을 하고 끊은 지성.

 

심란한 밤이 될 것 같다

낭만 같아 보였던 창문의 커다란 깨진 자국이 갑자기 심란하다.

 

찾지도 않던 신에게 나도 기도해본다.

제발, 빠른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도착만 해주세요. 

#4_1. 놀랍게도, 여기가 입구 맞습니다

 

 

뜨루 쁘렌드를 뒤로하고 기자 피라미드로 향한다.

 

숙소에서 외길인 데다가 저 멀리서 보이니 길을 잃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애초에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피라미드로 가고 있으니 사람만 따라가도 된다.

오전 9시인데도 엄청 덥다.

 

이게 입구라구요?

무슨 컨테이너 박스 같은 허접한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다.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는 우리에게 주변 이집션들이 익숙하다는 듯 이게 입구가 맞다, 저기서 표 사면된다며 안내를 해준다.  

 

기자 피라미드 입장권 - 160 EGP
학생증 제시 시 50% 할인 - 80 EGP

 

국제학생증은 없지만 혹시 몰라 챙겨 온 국내 학생증을 제시하고, 영어로 University라고 쓰여있으니 이건 학생증이 맞으며 고로 나는 학생이 맞다고 우기니 몇 번 갸우뚱하다 할인.

이집트 유적지는 학생 할인이 굉장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J와 나 둘 다 화석 수준의 학번이지만 혹시 몰라 옛날 학생증이라도 챙겨 가보기로 했고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University. 일반 학생증이어도 반드시 영어로 쓰여있어야 한다) 

 

ㅗ, ㅗㅜㅑ

숙소에서 나올 때부터 보였고 입장 전에도 봤지만, 눈 앞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입구에 서서 오우야 오우야 피라미드 오우야 하고 있으니 한 이집션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나는 여기 관리인인데, 내가 길을 안내해주겠다"

"?? 무슨 소리냐 입장료 냈다"

"아니다, 나에게 추가 이용료를 낼 필요는 물론 없다. 하지만 관광객은 이 쪽 길로 갈 수 없다. 날 따라와라"

 

일방적으로 말을 건 이집션은 우리를 이끌고 갑자기 먼 길을 빙 돌아갔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관광객은 그냥 올라갈 수 없다. 낙타를 타고 올라가거나, 마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무슨 개소리냐, 저쪽에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은 뭔데"

"아 그건 관광객이 아니고 학생들이다. 너희랑은 다르다"

 

아! 이거 또 사기구나!

 

의도적으로 낙타 주차장(?), 마차 주차장(?) 방향으로 돌아간 이집션은 우리가 영 호응이 없자 갑자기 포토스팟에 데려다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이때 끊었어야 했지만, 우리는 아직 Lv1의 쪼렙 여행자였다).

 

사기인건 알았지만 사이좋게 당한 호구 둘

핸드폰을 달라고 한 이집션은 이내 자세까지 알려주며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곤 우리를 물끄러미 말없이 바라본다.

 

아! 이게 박시시구나!

 

박시시는 이집트 특유의 문화라고 했다.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눈다는 뜻이라는데, 이게 좋게 말해 팁이고 솔직히 말하면 삥 뜯기다.

부유한 여행객인 너에게 내가 이런 호의를 베풀었으니 좀 나눠줘라 이거다.

 

역시 소중한 교훈은 무료가 아니라 유료인 모양이다. 20 EGP에 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땡큐 땡큐ㅎㅎㅎㅎㅎ"

어이가 없어 앞에서 한참을 웃고 있는데, 지나가던 서양인 커플이 우리를 보더니 너희도 속았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자 여기 이집션들 전부 Lier라며, 아무도 믿지 말라고 소중한 충고를 건네주었다.

 

[J]

이 때 처음으로 이집트의 태양을 느껴봤는데, 10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더웠다.
일단 날씨에서 육체적 피로 +10
들어가자마자 말 거는 이집트인때문에 정신적 피로 +10

 

 

#4_2.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음

 

 

크고 아름다운 피라미드

아무리 봐도 길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냥 언덕길을 따라 쭉 올라갔다

입구에서 봤을 땐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10분은 넘게 올라가도 피라미드는 계속 그 자리에 있고 가까워질 생각을 않는다.

이렇게 된 거 정면샷이나 찍자고 올라가다 말고 사진 삼매경.

 

나성범 쾌유 기원한답시고 들고갔는데, 이날 하루 찍고 안꺼냈다

 

낙타와 피라미드와 나

 

왠지 앉아서 찍으라고 만들어놓은 듯한 돌무덤(이미 지쳤다)

 

이날의 베스트샷

 

황폐한 유적지

한참을 올라가서야 3개의 피라미드 중 두 번째로 큰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까지 도착.

4천 년 전의 유적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더 충격인 건 관리 상태였는데, 돌에 낙서는 예삿일이요 부서져서 떨어져 나간 돌들도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지나가던 이집션이 첫 번째 단까지 올라가는 건 괜찮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압도적인 크기에 반대편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피라미드 옆으로 넘어가자 그 많은 관광객의 소음이 거짓말 같이 들리지 않는다

한 바퀴 돌았다간 쓰러질 것 같아서 적당히 멈추고 다시 사진 삼매경

 

보이지도 않는 나

 

화각에 차마 다 담기지 않는 엄청난 크기

돌 한 칸이 나보다 크거나 나만 했다

와 이걸 어떻게 사람이 와 이거 외계인이 지었다고 해도 에바다 와 말도 안 된다 감탄의 연속

 

갑자기 나타난 꼬맹이들

한참을 찍고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이집션 꼬맹이들이 몰려와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니 얘들도 뭘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둘 다 피라미드 크기에 취해서 못 알아듣고 그냥 무시했던 것 같기도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사진도 찍을 만큼 찍었으니 다음 코스로 이동

쿠푸왕의 피라미드 앞에서 발견된 태양의 배가 있는 태양의 배 박물관으로 간다

사진으로 보면 가깝지만 저놈의 박물관 역시 걸어서 10분 거리다

 

4천년 전의 배가 하늘을 날고 있다

태양의 배 박물관 입장권 - 100 EGP
학생증 제시 시 50% 할인 - 50 EGP
내부 사진 촬영권 - 50 EGP

Lv1의 관광객은 정직하게 내부 사진 촬영권도 구매했지만 더위에 지친 우리는 채 10장도 찍지 못하고

우와 배다 우와 배다 우와... 배네

의미 없는 감탄사만 내뱉은 뒤 박물관을 나섰다.

 

저 멀리 있는 친구는 눈으로만 보기로 한다

 

갑자기 낭만적이었던 낙타

[J]

피라미드는 진짜였다
아무리 인터넷 블로그 사진으로 잘 찍었다하더라도 
실제로 봤을 때의 그 크기, 위압감을 표현할 수 없다

피라미드 바로 앞에서 위로 올려 찍은 것 같은 "보이지도 않는 나" 사진도
거의 50m는 떨어져서 찍은 것이다
그 정도는 떨어져서 찍어야 피라미드 전체가 나옴

※ 태양의 배 박물관은 굳이 가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정도의 느낌

 

 

#4_3.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첫날 이후 J와 나는 몇 가지 주문을 외우면서 여행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피라미드에서 만난 빌런 그 2.

태양의 배 박물관을 나선 우리에게 또 이집션 하나가 다가온다

"꼬레아?"

이놈들은 얼굴만 보면 귀신 같이 국적을 알아차린다

"ㅇ, ㅇㅇ...."

"오 마이 프렌드 우리나라에 온 걸 환영해 여기 내 선물이야  한번 써봐"

"오 쓰는 법을 모르는구나! 굳 프렌드, 내가 도와줄게"

 

좋다고 쳐웃고 있는 나

 

굿 프렌드가 찍어준 나

프레젠트라며 나와 J에게 씌워준 터번 비스무리, 그리고 사진 몇 장

그리고 굿 프렌드는 우리에게 조금의 성의(!)를 보여달란다. 또 속았다

100 EGP를 꺼내자 그는 노골적으로 실망하며 자기는 가족도 있고 와이프도 있고 애도 있고...

그럼 다시 가져가라며 터번을 벗자 그건 또 아니라며 잽싸게 챙겨서 가는 프렌드가 멀어지며 외친다.

"이집트에 온 걸 환영해!"

 

 

피라미드에서 만난 빌런 그 3.

굿 프렌드를 보내자마자 이번엔 낙타(!) 하나가 다가온다

"꼬레아?"

 

낙타할배 등장

낙타 할배는 오더니 자기 낙타 멋있지 않냐, 한번 타보겠느냐, 아아아아 사기 아니다 호의다 호의 라며 자기의 호의를 강요했다.

 

필사적으로 거절하는 나

필요 없다, 낙타 무섭다, 메르스 메르스 하면서 팔까지 붙잡는 할배를 뿌리치자 이번엔 J를 노리는 낙타 할배

 

그리고 당해버린 J

J도 필사적으로 거절했고, 할배는 낙타를 타는 게 무서우면 내 "쩌는 지팡이"를 들고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그리고 당당히 외친다

"박시시!"

그렇게 속절없이 또 20 EGP를 뜯겨버렸다.

 

내려가는 길

한바탕 당하고 나서야 우리는 "관광객은 이용할 수 없다던 그 길"로 내려갈 수 있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스핑크스 키스 포토존

내려가다 보니 사람들이 또 한 무더기 모여있는 곳이 있다. 가서 보니 스핑크스랑 키스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J와 나도 프로 관광객답게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이집션들이 다가와 여기는 그렇게 찍는 게 아니다 훈수를 두곤 자기가 찍어주겠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한마디 건넸다.

"노노 고 어웨이"

 

길을 따라 내려와 빌런 1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입구의 카프레 계곡 신전을 둘러봤다.

더워서 정신없었지만 다시 스핑크스 포토존이 나와서 또 찰칵찰칵

모범적인 관광객 나

 

스핑크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지만, 피라미드와 비교하니 아담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광경

 

이제 나갑시다

[J]

이집트의 삐끼들을 우리나라 길거리 폰팔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뭐 말 안하고 무시하고 그냥 가면 되는거 아니냐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

그렇다고 정직한 것도 아니어서,
free gift 라고 1분전에 이야기하고 바로 뒤집는다

 

 

#4_4. 사람들이 기자 피라미드 앞 피자헛을 찬양하는 이유

 

 

여행 전 찾아봤던 피라미드 후기에는 피라미드 앞 KFC/피자헛이 꼭 등장했다

마치 주요 관광스팟 같았는데 나도 가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정도 더위 속에서 걷고 나면 어디든 들어가고 싶어 지고, 그런 여행자에게 피자헛은 천국과도 같다

 

킹-시와 피라미드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피자헛 뷰

킹-시를 마시면서 보는 피라미드는 정말 멋졌다

진짜 내가 저 멀리 있는 피라미드까지 갔다 온 건가 싶고, 이 더위에 내가 다시 나가야 하나 싶고, 모든 게 거짓말 같고...

더위에 지쳐 한참을 뻗어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

 

날이 밝고서 처음 본 숙소 입구 3Pyramid Inn

숙소로 돌아와 맡겨놨던 짐을 찾고 다시 길을 나섰다

소개해준 뜨루 쁘렌드를 무시하고 나서서 해코지당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

 

숙소 앞에서 미리 어플로 부른 우버를 타고 카이로 시내로 이동했다.

 

[J]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 피로가 겹친 와중에 마시는 콜라 한 캔
힐링 포션이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듬

#3_1.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첫날 숙소로 선택한 3 Pyramids View Inn는 옥상에서 보는 피라미드 뷰가 끝내준다는 후기가 많았다.

 

"동이 트는 피라미드는 끝내줄 거야, 아침에 다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보고 자자"

"진짜 그래야겠냐"

 

3시 넘어 잠들었지만, 미리 맞춰놓은 5시 50분에 울린 알람 소리에 주섬주섬 일어나 루프탑으로 올라간다. 

 

음?

뭔가 이상한데

 

ㅎㅎ..ㅈㅅ!

 

망연자실한 나

1. 피라미드는 서쪽에 있다.

2. 해는 동쪽에서 뜬다.

3. 따라서 피라미드에서 동트는 건 볼 수 없다.

 

여행 출발 전에 분명히 어디서 사진을 본 것 같은데 동트는 게 아니라 해가 지는 걸 찍은 거였나.

기왕 올라온 거 사진이라도 좀 찍고 내려가자며 퉁퉁 부은 얼굴로 서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눈 앞에 있는 저게 피라미드인지 뭔지 실감은 나지 않는다. 이집트 온 거 맞지?

 

 

#3_2. 이집트 도로는 아무거나 다닌다.

 

여덟 시에 숙소에서 나서자고 계획했지만 피로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첫날이니 무리하지 말자며 여덟시에 숙소가 아닌 조식을 먹으러 방을 나섰다.

 

숙소에 걸려있던 액자들 - 이집트에 오신게 맞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있으면 가져다주겠다는 직원의 말에 황송해하며 옥상으로 올라간다.

아까 올라와서 봤던 피라미드인데 괜히 새롭다.

미리 온 외국인 손님들이 있어 조심스럽게 ㅎㅇ를 건네 보지만 피곤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인지 나지막한 ㅎㅇ만 돌아온다. 

 

밤새 다그닥 거리던 소리의 정체

 

분명 차도인데 낙타, 트럭, 마차, 사람이 모두 다니고 있는 진풍경

차와 마차, 낙타가 뒤엉킨 거리를 보고 있자니 뒤에서 현실감 없이 서있는 피라미드보다 이 기묘한 탈 것 3개의 조합이 오히려 내가 지구 반대편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어젯밤에 숙소에 오면서 봤던 고속도로 위의 마차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끝내줬던 조식 

왠지 몰라도 무척 수줍어하던 직원이 가져다준 조식. 일어나기 전부터 코를 간지럽히던 고소한 냄새가 이 달걀 냄새였나보다.

달걀부침, 빵, 딸기 요거트, 꿀과 치즈까지. 무료로 제공되는 조식인데도 메뉴가 풍성하고 다양하다.

(사진엔 없지만 커피도 갖다 줬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정찬에 나도 J도 매우 만족했다. 5/7

 

오늘 오전은 피라미드를 볼 생각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기자 로비의 직원이 부리나케 일어나 자기를 따라오란다.

입구 벤치에 백수마냥 앉아있던 이집션에게 데려가더니 이 친구는 자기의 믿을 수 있는 뜨루 쁘렌드란다. 아 이거 투어 하라는 거구나.

불현듯 이집트 여행 후기 글마다 신신당부하듯 적혀있는 말들이 기억났다.

"사기꾼 천지예요!"

뜨루 쁘렌드는 자기네 사무실로 우릴 끌고 가더니 자신의 스페셜한 낙타 투어를 소개해줬다. 낙타 투어는 1인당 200파운드고 이건 미들 투어이며 롱 투어는 가격이 더 오른단다. 웃으면서 우린 필요 없다고 하니 가격이 점점 내려간다. 어디까지 가나 싶어서 계속 No라고 하니 1인 200이었던 미들 투어는 어느새 롱 투어 2인 300까지 내려간다.

나는 낙타를 무서워하니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가게를 뛰쳐나왔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뜨루 쁘렌드의 눈길이 따갑다.

 

따갑거나 말거나 우리는 여행의 시작,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보러 간다.

 

[J]

가게에서 보여준 W의 삐끼 거절 스킬은 나날이 늘고 있다.

W와 함께라면 어떤 삐끼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피라미드 입장과 동시에 당했으니, 기대와 예상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다.

#2_1. 러시아 탈출기

 

무표정한 입국심사장 아저씨를 넘어 무사히 입국 완료
이제 카이로행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

아따 많기도 하다

 

찾았다 카이로

환승지인 셰레메티예보 공항은 10분에 3대씩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들로 가득하다.

러시아 국적기인 아에로플로트는 환승 시 짐 분실로 악명이 자자했다. 아에로플로트의 잘못이라기보다 하루에도 수십대의 비행기가 오가니 실수가 생긴다는 변명이 있었는데, 전광판을 보고 나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내 짐을 잃어버리는건 또 다른 문제다. 무사히 카이로로 배낭이 넘어가길 빌었다.

알아볼 수 없는 키릴문자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키릴문자 사이로 반가운 영어가 보인다. 이럴 때만큼은 영어가 내 모국어다
인파를 뚫고 환승게이트인 F47로 ㄱㄱ

F47. 이제 여기서 3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환승게이트를 지나고서도 20분 정도를 걸어와서야 F47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가 본 공항 중 가장 넓은 공항이다.
전광판에 F47 Cairo라고 써있건만, 맞게 온 건지 끊임없이 불안하다. 아랍인처럼 생긴 이들이 있는 걸 보면 맞게 온 것 같기도 하고..
2045 출발이니 여기서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하릴없이 앉아있을바엔 구경이라고 하자며 잠시 돌아다니기로 했다.

푸-틴(사고싶진 않다)

면세점을 둘러보는데 어딜가도 푸틴이 날 따라다닌다. 이 양반이 그렇게 인기라더니 어딜 가나 푸틴이 가득하다. 마트료쉬카마저도 푸틴. 정신 나간 센스의 마트료쉬카는 이것 말고도 많았다.

우리의 여행을 함께해준 보드카 <용기>

인천 출발 전에 J(술 잘 못함)는 러시아에 가면 보드카라도 사야되는거 아니냐고 웃었다. 나(주량 반 병)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마침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사이즈의 보드카가 있었다. 디자인부터 앱솔루트와는 다른, 러시아의 기상이 느껴지는 보드카. 우리는 우리에게 용기를 줄 친구라며 이 보드카를 앞으로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용기> 한 잔!
사막 투어에서 같이 온 이들과 함께 <용기> 한 잔!
캬 상상만으로도 취한다

[J]

보드카를 사고 비행기에 오르는 계단에서 W가 갑자기
보드카! 보드카! 이런 노래가 있다면서 흥얼거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주! 소주!
이런 가사지 싶어 어떤 말도 안되는 노래냐 싶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있는 노래라고 한다
역시 뻘소리는 많이해도 거짓말은 안 하는 친구
(KORPIKLAANI - Vodka)

 

 

피곤에 찌든 0일차 여행자

<용기>도 샀고 면세점 구경도 했는데 아직도 한참이다.
괜히 사진도 찍어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샌드위치 먹고 싶은데 비싸서 참고(보드카보다 훨씬 비쌌다) 인터넷도 하고 엔씨 욕도 하고 하고하고하다보니 탑승 알람이 울린다. 드디어 아프리카로 간다.

납치 아님

내렸을 때와 같이 버스를 털털털ㄹ렅 타고 비행기 앞으로.
내릴 때만 해도 석양이 발간 오후였는데 어느새 캄캄하다.
현지시간으론 2040이지만 한국은 0240이다.

좁다

모스크바로 올 때보단 작은 비행기. 앞으로 다섯 시간만 더 가면 된다.

카이로에 도착하면 한국시간으로 아침 8시정도이니 도착해서 잠깐 자면 결과적으로 밤새고 오침 하는 것과 진배없다며 합리화를 한다.
자리에 앉아 필터링 없이 떠들다보니 옆자리 이집션 아저씨가 본인도 한국과 거래를 하신다며 대화에 끼어든다. 방직 기계를 수출입한다며 자기가 가진 기계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최근 방직기계 컨벤션에 다녀오셨으며, 수출입은 배를 통해서 하시는 중. 중국 기계가 100달러면 일본 기계는 1000달러라고 한다. 쓸데없는 지식이 또 늘었다.
내릴 때쯤 이것도 인연이니 사진이나 하나 찍자고 해볼까.

사실 얘기하면서 이것도 인연이니 카이로에 가면 우리집에 와서 밥이나 먹어라 하는 여행자의 낭만은 없는가 하고 내심 기대해보았다. 하지만 우리도 의미 없는 대답만 반복하고, 아저씨 본인도 더 이상 자랑할 거리가 없어서인지 대화는 금세 식어버렸다. 낭만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도 기내식은 꼬박꼬박 준다

(기내에서 쓴 일기)
모스크바 시간 2230, 한국시간 0430

정신없이 자다 흠칫 눈을 뜨니 저 앞에서 배식카트가 다가오고 있다. 아 밥 먹을 시간이구나. 그럼 또 먹어야지. J를 깨운다. 치킨 올 비프? 비프. 모스크바행의 기내식 두 끼보다 음식 가짓수는 많으나 맛은 꽝이다. 기름을 꼭 짜낸 참치캔과 알 수 없는 곡물의 메인 요리. 빵과 버터마저도 모스크바 행보다 맛이 별로다. 치즈와 파란 봉지의 과자가 맛있었으니 봐주겠다. 3/7

아까 맥주는 괜히 마셨다. 골이 울린다.앞으로 두 시간 남짓 남았다. 다시 기절한다.

공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다함께 박수를 쳤다. 뭐지?
아무튼 감사하는건 좋은 거라며 나도 같이 쳤다. 수학여행 같네.

 

 

#2_2. 날 들여보내주오 제발

 

도착하면 할 일 : 입국 비자 사기, 환전하기

(비몽사몽 간에 내려서 그런가 도착 사진이 없다)

기도가 통해서일까 다행히 짐은 어디 가지 않고 제대로 제시간에 나왔다.

짐을 찾으면 가장 먼저 도착 비자 구입부터 해야 한다. 짐 찾는 곳 근처에 은행 창구가 두 군데 있는데, 어느 쪽이나 상관없이 구매가 가능한 듯했다. 우리는 어버버버하다 왼쪽의 붉은색 간판(!)에서 비자를 구매하고 오른쪽의 녹색 간판(!!)에서 미리 인천공항에서 환전해간 달러를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했다.

 

비자 구매 비용 : 25달러
달러 > 이집트 파운드 환전 : 기억나지 않음 - 시세 나쁘지 않았음(사실 몰랐음)

 

[J]

이집트에선 하도 사기를 많이 친다는 얘기가 있어
이거 환전도 사기아냐? 싶어서 계산을 둘이서 대충 해본결과
사기는 아니었다라는 결론..

아무리 그래도 공항 환전소에서는 사기 안 치는구나 라는 결론

 

이집트 도착 비자. 스티커를 주면 알아서 붙여야 한다

예쁘게 붙혀보겠다고 용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테두리를 안 떼고 전부 다 붙여버렸다.

 

ㅗㅜㅑ

환전도 했고, 비자도 샀으니 입국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어디에도 펜이 없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게 없으니 한참을 당황하다 결국 근처를 지나가던 콧수염이 멋진 공항 직원에게 펜을 빌려서 근근이 작성했다. 펜,,, 펜을 꼭 챙기십시오.

 

새벽인데도 입국심사장에 사람이 정말 매우 무지막지하게 많다. 타들어가는(빨리 쉬고 싶은)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의 손은 느긋하기만 하다.

 

헬로 카이로 에어포트!

한참을 걸려 나온 입국 심사장. 금박이 번쩍번쩍 피라미드가 반겨줄거라고 혼자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평범해서 실망했다. 실망은 실망이고, 빨리 다음 일을 해야 한다.

 

 

#2_3. 이집트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우리는 로밍 대신 이집트 유심칩을 구매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모두 통신사 쪽으로 달려가니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여러 통신사가 있었는데 우리는 보다폰을 선택했다.

 

통신의 요정 지니...?

인터넷 10기가 + 통화 ?분 : 250 파운드

기왕 하는 거 그냥 걱정 없이 넉넉하게 쓰기 위해 10기가짜리로 골랐다. 통화야 어차피 이집트 국내 전화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3G다. 아 이런 속도로 인터넷을 했었지... 5G가 벌써 그립다.

 

이게 된건지 아닌건지 나는 모르겠소이다

뭔가 뜨긴 뜨는 걸 보니 연결은 제대로 된 모양인데, 자꾸 아랍어로 문자와 경고문이 뜨니 괜히 불안하다.

네이버가 들어가지니 인터넷은 연결되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유심칩도 샀겠다 이제 숙소로 갈 시간이다.

 

보통은 공항 앞의 택시 삐끼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첫날+새벽 도착(0035)이니 아예 공항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소를 선택했다.

3 Pyramids View Inn
\ 42,768
기자 피라미드 근처
싱글 2개, 무료 조식, 공항 픽업 서비스 무료

 

도착은 0035라고 했으나 공항에서 나온 건 0140 정도. 최소 한 시간 반을 기다렸을 드라이버는 약간은 지친 표정으로 우릴 차량으로 안내했다.

 

여기 정말 카이로 맞아?

공항에서 숙소까진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다. 차를 타고서도 50분 정도를 더 가서야 숙소에 도착. 

 

크고 깨끗했던 방

 

이때는 몰랐지만 아주 훌륭했던 화장실

[J]

이 정도 화장실이면 거의 5성급. 들어가 자도 됨
앞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집트 각 관광지에 있는 화장실이란.. 매우 도전정신이 있어야 시도가능함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깨끗했다.

도착해서 간단히 씻고 나오니 벌써 시간은 0300. 아침부터 움직일 생각을 하면 빨리 자야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눈이 감기질 않는다.

 

약 14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지구 반대편의 낯선 나라, 이집트에 왔다.

내일은 가장 보고 싶었던 피라미드를 보러 간다.

꿈만 같았던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지도 벌써 5개월이나 지났다.

이번만큼은 기록해야지, 남겨놔야지 다짐했지만 어영부영 달이 바뀌고 해가 지나갔다.

전부 아련한 전생의 기억처럼 사라지기 전에, 첫날부터 천천히 기록을 시작한다.

[J를 꼬셔서(강요해서) 같이 기록한다]

 

 

#0. 사건의 발단

 

내 버킷리스트의 1번은 언제나 이집트에 가보는 것이었다. 어릴 때 읽었던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가 원인이었다.

뜨거운 사막, 파라오의 유물과 웅장한 피라미드, 신전, 도도하게 흐르는 나일강!

W(11) 어린이는 그렇게 이집트 뽕에 취해버렸고, 언젠간 가리라 마음을 먹었더랬다.

 

차일피일 늙어가던 직장인 W(31)는 10월에 황금연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장인에게만 보이는 10박 11일

똑같은 5일을 내도 8박 9일이 10박 11일로 업그레이드되는 기적의 황금연휴.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행 난이도 최하의 일본만 가봤지 아시아 너머로는 가본 적이 없는 쫄보.

같이 갈 사람으로 군대 동기 J를 꼬시기로 한다.

 

이집트는 어떤 곳이며, 왜 가야하는지 J를 설득했던 장장 66분의 통화

"야 여행 갈래?"

"어디"

"이집트"

"태어나서 여행을 갈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곳이군"

 

생각은 해본다며 전화를 마친 J는 월요일 아침, 카톡을 보냈다

"야 이집트 10개월 할부라고??"

그리고 2시간 뒤, 우리는 이집트행 왕복 항공권을 결제했다.

 

[J]

항공권 결제하고 이집트 가기까지 10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지인들과 이런 대화를 10번쯤은 한 것 같다.

나 : 저 10월에 여행가요
지인 : 오 좋겠다! 어디로?
나 : 이집트요
지인 : (...) 왜?

10개월 동안의 여행준비는 그 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랄까
하튼 카톡대로 무이자 할부가 아니었다면 여행 안 갈 수도 있었다
무이자 할부 지원해주신 현대카드께 감사의 인사드림

 

그리하여 예약한 비행 스케쥴

 

 

#1_1. 여행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집에서 아버지 몰래 들고온 여행 배낭과 밀짚모자 "낭만"

[J]
우리는 저 밀짚모자("낭만")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13시 비행기니 넉넉하게 09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아뿔싸 공항 리무진 버스에 자리가 없다.

집 앞 정류장이 인천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 정류장이라 그런지 타기도 전에 다 차 버린 것.

 

지금이라도 지하철로 뛸까, 쏘카라도 빌려야 되나 고민하던 중에 버스에서 내린 분이 말을 건다. 

"혹시 인천공항 가시나요?"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택시 타고 가시죠. 리무진 버스비만 주시면 나머지 차액은 제가 부담할게요"

얘기를 들어보니, 이분은 바로 앞 정류장에서 타려고 했다 까이셨고(?) 다음 정류장까지만 태워달라 부탁해서 타고 오셨던 것. 다음 버스가 온다고 해서 자리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 당연히 내 대답은 YES다.

 

사실 이 때 여권을 챙겼는지 안챙겼는지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함. 

태풍으로 항공기 결항이다 뭐다 말이 많았는데 출발일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진 하늘.

뜻하지 않은 택시 덕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J를 기다린다.

 

13:00 SU251편

우리는 돌아오는 날 반나절 정도 짬을 내어 모스크바 관광도 할 수 있는 일정이라 아에로플로트(모스크바 경유)를 선택했다. 물론 이게 다른 항공권과 비교했을 때 저렴하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 한국인의 빅-불버거

조금 뒤 도착한 J를 만나 짐을 붙이고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 식사(?)니만큼 한식을 먹으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그냥 롯데리아로.

 

때마침 볼 수 있었던 공항수문장교대식

 

아직 출발 전이라 둘 다 표정이 좋다

 

다들 어디로 가는걸까

 

여행 가면 다들 찍잖아요

 

우리가 타는 비행기 같지만 사실 아니다

 

우리가 탈 아에로플로트. 마더-로씨아 국적기

 

출발합니다

 

#1_2. 우리는 모스크바로 갑니다

 

비행기 내부

 

먼길 간다고 뭘 많이 챙겨준다

 

인천부터 모스크바까지 9시간 30분의 비행. 조금 늦었는지 J와 나는 붙어있는 자리는 받지 못했다.

이 와중에 내 자리는 왼쪽에는 쏘련 누나, 오른쪽에는 쏘련 아재의 가운데 자리. 

처음 본 외국인과 인사를 나눌 만큼의 인싸력은 없으니 조용히 영화나 보며 가기로 한다.

 

정말 정말 정말 좋았던 날씨

 

내가 지금 갑니다

 

인천을 막 출발하고 난 뒤

 

서빙 된 지굴리 맥주. 술도 못하면서 괜히 마셔본다

쏘련 누나도, 쏘련 아재도 맥주를 마시길래 나도 질 수 없다며 마셔본 지굴리 맥주

(심지어 오른쪽 아재는 식전에 4캔을 마셨다)

맥주 마시고 빨리 기내식 먹고 기절하는 게 목표다.

이게 유명한 맥주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혼자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거 맛있네.

 

여담. 이 맥주 한 캔 때문에 모스크바 내려서 숙취로 고생함.

 

그 사이 비행기는 중국 위를 날아가고 있다. Duolun이 어디야

 

기내식 리스트

앉자마자 확인한 기내식 리스트

이렇게 메뉴판을 보니 괜스레 설렌다.

 

으깬 감자와 라따뚜이를 곁들인 토마토 소스 대구. a.k.a. fish

 

굴소스를 곁들인 에그누들과 생강소스를 곁들인 볶은 닭고기. a.k.a. chicken

(기내에서 쓴 일기)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깼다. 기내용으로 제공된 안대를 꼈는데, 역시 자는 데는 안대만 한 게 없다. 나중에 챙겨야지.
옆자리 아재가 보다가 잠이 든 인피니티워를 멍하니 본다. 마침 또 타이탄 행성에서 싸우는 씬이라 눈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아! 아재가 잠에서 깨서 잠든 부분까지 돌려버렸다. 내리기 전까진 나오겠지.
여행 계획이라도 짤까 싶어 일어나기로 한다. 이렇게 무계획으로 가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걱정도 든다.
지금쯤이면 야구는 한창 초반 3,4이닝쯤이겠지. 하느님알라님김택진님 엔씨가 이기게 해 주세요.

 

왠지 거의 다 온 것 같다

 

내려간다ㅏㅏㅏ

비행기가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기장일까? 멋진 제복을 입은 러시아 승무원이 돌아다닌다.

소매에 낫과 망치 마크가 박혀있다. 역시 러시아야!

 

이렇게 덩그러니 내려줘버림

덩그러니 활주로에 내려버렸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가라는데, 잠도 덜 깨고 아까 마신 맥주 탓인가 정신이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여행 오기 잘했다고 느꼈던 첫번쨰 지점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아 나 지금 여행 왔구나.

 

뜻하지 않게 너무 멋있는 광경을 본 나. 싱글벙글

아무튼 도착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오 쉣

여행 전에 모스크바에서 환승을 가장 걱정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국장부터 헬이다.

이 많은 인파를 뚫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물론 가는 길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쉽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와이파이를 잡고 야구 결과를 찾아봤다.

1-3 패배. 응 수고요

여행 내내 야구 볼 걱정은 없겠구나 :) 망할

 

[J]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했다.
1. 러시아는 춥다
2. 러시아 입국 심사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너는 러시아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처음엔 그냥 보내줬지만 다음 모스크바는 쉽지 않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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