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4. 이집트 여행 #4. 2일차 오전. 기자 피라미드
#4_1. 놀랍게도, 여기가 입구 맞습니다
뜨루 쁘렌드를 뒤로하고 기자 피라미드로 향한다.
숙소에서 외길인 데다가 저 멀리서 보이니 길을 잃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애초에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피라미드로 가고 있으니 사람만 따라가도 된다.
오전 9시인데도 엄청 덥다.
무슨 컨테이너 박스 같은 허접한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다.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는 우리에게 주변 이집션들이 익숙하다는 듯 이게 입구가 맞다, 저기서 표 사면된다며 안내를 해준다.
기자 피라미드 입장권 - 160 EGP
학생증 제시 시 50% 할인 - 80 EGP
국제학생증은 없지만 혹시 몰라 챙겨 온 국내 학생증을 제시하고, 영어로 University라고 쓰여있으니 이건 학생증이 맞으며 고로 나는 학생이 맞다고 우기니 몇 번 갸우뚱하다 할인.
이집트 유적지는 학생 할인이 굉장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J와 나 둘 다 화석 수준의 학번이지만 혹시 몰라 옛날 학생증이라도 챙겨 가보기로 했고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University. 일반 학생증이어도 반드시 영어로 쓰여있어야 한다)
숙소에서 나올 때부터 보였고 입장 전에도 봤지만, 눈 앞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입구에 서서 오우야 오우야 피라미드 오우야 하고 있으니 한 이집션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나는 여기 관리인인데, 내가 길을 안내해주겠다"
"?? 무슨 소리냐 입장료 냈다"
"아니다, 나에게 추가 이용료를 낼 필요는 물론 없다. 하지만 관광객은 이 쪽 길로 갈 수 없다. 날 따라와라"
일방적으로 말을 건 이집션은 우리를 이끌고 갑자기 먼 길을 빙 돌아갔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관광객은 그냥 올라갈 수 없다. 낙타를 타고 올라가거나, 마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무슨 개소리냐, 저쪽에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은 뭔데"
"아 그건 관광객이 아니고 학생들이다. 너희랑은 다르다"
아! 이거 또 사기구나!
의도적으로 낙타 주차장(?), 마차 주차장(?) 방향으로 돌아간 이집션은 우리가 영 호응이 없자 갑자기 포토스팟에 데려다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이때 끊었어야 했지만, 우리는 아직 Lv1의 쪼렙 여행자였다).
핸드폰을 달라고 한 이집션은 이내 자세까지 알려주며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곤 우리를 물끄러미 말없이 바라본다.
아! 이게 박시시구나!
박시시는 이집트 특유의 문화라고 했다.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눈다는 뜻이라는데, 이게 좋게 말해 팁이고 솔직히 말하면 삥 뜯기다.
부유한 여행객인 너에게 내가 이런 호의를 베풀었으니 좀 나눠줘라 이거다.
역시 소중한 교훈은 무료가 아니라 유료인 모양이다. 20 EGP에 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땡큐 땡큐ㅎㅎㅎㅎㅎ"
어이가 없어 앞에서 한참을 웃고 있는데, 지나가던 서양인 커플이 우리를 보더니 너희도 속았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자 여기 이집션들 전부 Lier라며, 아무도 믿지 말라고 소중한 충고를 건네주었다.
[J]
이 때 처음으로 이집트의 태양을 느껴봤는데, 10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더웠다.
일단 날씨에서 육체적 피로 +10
들어가자마자 말 거는 이집트인때문에 정신적 피로 +10
#4_2.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음
아무리 봐도 길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냥 언덕길을 따라 쭉 올라갔다
입구에서 봤을 땐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10분은 넘게 올라가도 피라미드는 계속 그 자리에 있고 가까워질 생각을 않는다.
이렇게 된 거 정면샷이나 찍자고 올라가다 말고 사진 삼매경.
한참을 올라가서야 3개의 피라미드 중 두 번째로 큰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까지 도착.
4천 년 전의 유적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더 충격인 건 관리 상태였는데, 돌에 낙서는 예삿일이요 부서져서 떨어져 나간 돌들도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지나가던 이집션이 첫 번째 단까지 올라가는 건 괜찮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피라미드 옆으로 넘어가자 그 많은 관광객의 소음이 거짓말 같이 들리지 않는다
한 바퀴 돌았다간 쓰러질 것 같아서 적당히 멈추고 다시 사진 삼매경
돌 한 칸이 나보다 크거나 나만 했다
와 이걸 어떻게 사람이 와 이거 외계인이 지었다고 해도 에바다 와 말도 안 된다 감탄의 연속
한참을 찍고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이집션 꼬맹이들이 몰려와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니 얘들도 뭘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둘 다 피라미드 크기에 취해서 못 알아듣고 그냥 무시했던 것 같기도
사진도 찍을 만큼 찍었으니 다음 코스로 이동
쿠푸왕의 피라미드 앞에서 발견된 태양의 배가 있는 태양의 배 박물관으로 간다
사진으로 보면 가깝지만 저놈의 박물관 역시 걸어서 10분 거리다
태양의 배 박물관 입장권 - 100 EGP
학생증 제시 시 50% 할인 - 50 EGP
내부 사진 촬영권 - 50 EGP
Lv1의 관광객은 정직하게 내부 사진 촬영권도 구매했지만 더위에 지친 우리는 채 10장도 찍지 못하고
우와 배다 우와 배다 우와... 배네
의미 없는 감탄사만 내뱉은 뒤 박물관을 나섰다.
[J]
피라미드는 진짜였다
아무리 인터넷 블로그 사진으로 잘 찍었다하더라도
실제로 봤을 때의 그 크기, 위압감을 표현할 수 없다
피라미드 바로 앞에서 위로 올려 찍은 것 같은 "보이지도 않는 나" 사진도
거의 50m는 떨어져서 찍은 것이다
그 정도는 떨어져서 찍어야 피라미드 전체가 나옴
※ 태양의 배 박물관은 굳이 가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정도의 느낌
#4_3.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첫날 이후 J와 나는 몇 가지 주문을 외우면서 여행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피라미드에서 만난 빌런 그 2.
태양의 배 박물관을 나선 우리에게 또 이집션 하나가 다가온다
"꼬레아?"
이놈들은 얼굴만 보면 귀신 같이 국적을 알아차린다
"ㅇ, ㅇㅇ...."
"오 마이 프렌드 우리나라에 온 걸 환영해 여기 내 선물이야 한번 써봐"
"오 쓰는 법을 모르는구나! 굳 프렌드, 내가 도와줄게"
프레젠트라며 나와 J에게 씌워준 터번 비스무리, 그리고 사진 몇 장
그리고 굿 프렌드는 우리에게 조금의 성의(!)를 보여달란다. 또 속았다
100 EGP를 꺼내자 그는 노골적으로 실망하며 자기는 가족도 있고 와이프도 있고 애도 있고...
그럼 다시 가져가라며 터번을 벗자 그건 또 아니라며 잽싸게 챙겨서 가는 프렌드가 멀어지며 외친다.
"이집트에 온 걸 환영해!"
피라미드에서 만난 빌런 그 3.
굿 프렌드를 보내자마자 이번엔 낙타(!) 하나가 다가온다
"꼬레아?"
낙타 할배는 오더니 자기 낙타 멋있지 않냐, 한번 타보겠느냐, 아아아아 사기 아니다 호의다 호의 라며 자기의 호의를 강요했다.
필요 없다, 낙타 무섭다, 메르스 메르스 하면서 팔까지 붙잡는 할배를 뿌리치자 이번엔 J를 노리는 낙타 할배
J도 필사적으로 거절했고, 할배는 낙타를 타는 게 무서우면 내 "쩌는 지팡이"를 들고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그리고 당당히 외친다
"박시시!"
그렇게 속절없이 또 20 EGP를 뜯겨버렸다.
한바탕 당하고 나서야 우리는 "관광객은 이용할 수 없다던 그 길"로 내려갈 수 있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내려가다 보니 사람들이 또 한 무더기 모여있는 곳이 있다. 가서 보니 스핑크스랑 키스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J와 나도 프로 관광객답게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이집션들이 다가와 여기는 그렇게 찍는 게 아니다 훈수를 두곤 자기가 찍어주겠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한마디 건넸다.
"노노 고 어웨이"
길을 따라 내려와 빌런 1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입구의 카프레 계곡 신전을 둘러봤다.
더워서 정신없었지만 다시 스핑크스 포토존이 나와서 또 찰칵찰칵
[J]
이집트의 삐끼들을 우리나라 길거리 폰팔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뭐 말 안하고 무시하고 그냥 가면 되는거 아니냐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
그렇다고 정직한 것도 아니어서,
free gift 라고 1분전에 이야기하고 바로 뒤집는다
#4_4. 사람들이 기자 피라미드 앞 피자헛을 찬양하는 이유
여행 전 찾아봤던 피라미드 후기에는 피라미드 앞 KFC/피자헛이 꼭 등장했다
마치 주요 관광스팟 같았는데 나도 가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정도 더위 속에서 걷고 나면 어디든 들어가고 싶어 지고, 그런 여행자에게 피자헛은 천국과도 같다
킹-시를 마시면서 보는 피라미드는 정말 멋졌다
진짜 내가 저 멀리 있는 피라미드까지 갔다 온 건가 싶고, 이 더위에 내가 다시 나가야 하나 싶고, 모든 게 거짓말 같고...
더위에 지쳐 한참을 뻗어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숙소로 돌아와 맡겨놨던 짐을 찾고 다시 길을 나섰다
소개해준 뜨루 쁘렌드를 무시하고 나서서 해코지당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
숙소 앞에서 미리 어플로 부른 우버를 타고 카이로 시내로 이동했다.
[J]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 피로가 겹친 와중에 마시는 콜라 한 캔
힐링 포션이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듬
'GO > 191003-191013 이집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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