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1. 러시아 탈출기

 

무표정한 입국심사장 아저씨를 넘어 무사히 입국 완료
이제 카이로행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

아따 많기도 하다

 

찾았다 카이로

환승지인 셰레메티예보 공항은 10분에 3대씩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들로 가득하다.

러시아 국적기인 아에로플로트는 환승 시 짐 분실로 악명이 자자했다. 아에로플로트의 잘못이라기보다 하루에도 수십대의 비행기가 오가니 실수가 생긴다는 변명이 있었는데, 전광판을 보고 나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내 짐을 잃어버리는건 또 다른 문제다. 무사히 카이로로 배낭이 넘어가길 빌었다.

알아볼 수 없는 키릴문자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키릴문자 사이로 반가운 영어가 보인다. 이럴 때만큼은 영어가 내 모국어다
인파를 뚫고 환승게이트인 F47로 ㄱㄱ

F47. 이제 여기서 3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환승게이트를 지나고서도 20분 정도를 걸어와서야 F47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가 본 공항 중 가장 넓은 공항이다.
전광판에 F47 Cairo라고 써있건만, 맞게 온 건지 끊임없이 불안하다. 아랍인처럼 생긴 이들이 있는 걸 보면 맞게 온 것 같기도 하고..
2045 출발이니 여기서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하릴없이 앉아있을바엔 구경이라고 하자며 잠시 돌아다니기로 했다.

푸-틴(사고싶진 않다)

면세점을 둘러보는데 어딜가도 푸틴이 날 따라다닌다. 이 양반이 그렇게 인기라더니 어딜 가나 푸틴이 가득하다. 마트료쉬카마저도 푸틴. 정신 나간 센스의 마트료쉬카는 이것 말고도 많았다.

우리의 여행을 함께해준 보드카 <용기>

인천 출발 전에 J(술 잘 못함)는 러시아에 가면 보드카라도 사야되는거 아니냐고 웃었다. 나(주량 반 병)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마침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사이즈의 보드카가 있었다. 디자인부터 앱솔루트와는 다른, 러시아의 기상이 느껴지는 보드카. 우리는 우리에게 용기를 줄 친구라며 이 보드카를 앞으로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용기> 한 잔!
사막 투어에서 같이 온 이들과 함께 <용기> 한 잔!
캬 상상만으로도 취한다

[J]

보드카를 사고 비행기에 오르는 계단에서 W가 갑자기
보드카! 보드카! 이런 노래가 있다면서 흥얼거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주! 소주!
이런 가사지 싶어 어떤 말도 안되는 노래냐 싶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있는 노래라고 한다
역시 뻘소리는 많이해도 거짓말은 안 하는 친구
(KORPIKLAANI - Vodka)

 

 

피곤에 찌든 0일차 여행자

<용기>도 샀고 면세점 구경도 했는데 아직도 한참이다.
괜히 사진도 찍어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샌드위치 먹고 싶은데 비싸서 참고(보드카보다 훨씬 비쌌다) 인터넷도 하고 엔씨 욕도 하고 하고하고하다보니 탑승 알람이 울린다. 드디어 아프리카로 간다.

납치 아님

내렸을 때와 같이 버스를 털털털ㄹ렅 타고 비행기 앞으로.
내릴 때만 해도 석양이 발간 오후였는데 어느새 캄캄하다.
현지시간으론 2040이지만 한국은 0240이다.

좁다

모스크바로 올 때보단 작은 비행기. 앞으로 다섯 시간만 더 가면 된다.

카이로에 도착하면 한국시간으로 아침 8시정도이니 도착해서 잠깐 자면 결과적으로 밤새고 오침 하는 것과 진배없다며 합리화를 한다.
자리에 앉아 필터링 없이 떠들다보니 옆자리 이집션 아저씨가 본인도 한국과 거래를 하신다며 대화에 끼어든다. 방직 기계를 수출입한다며 자기가 가진 기계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최근 방직기계 컨벤션에 다녀오셨으며, 수출입은 배를 통해서 하시는 중. 중국 기계가 100달러면 일본 기계는 1000달러라고 한다. 쓸데없는 지식이 또 늘었다.
내릴 때쯤 이것도 인연이니 사진이나 하나 찍자고 해볼까.

사실 얘기하면서 이것도 인연이니 카이로에 가면 우리집에 와서 밥이나 먹어라 하는 여행자의 낭만은 없는가 하고 내심 기대해보았다. 하지만 우리도 의미 없는 대답만 반복하고, 아저씨 본인도 더 이상 자랑할 거리가 없어서인지 대화는 금세 식어버렸다. 낭만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도 기내식은 꼬박꼬박 준다

(기내에서 쓴 일기)
모스크바 시간 2230, 한국시간 0430

정신없이 자다 흠칫 눈을 뜨니 저 앞에서 배식카트가 다가오고 있다. 아 밥 먹을 시간이구나. 그럼 또 먹어야지. J를 깨운다. 치킨 올 비프? 비프. 모스크바행의 기내식 두 끼보다 음식 가짓수는 많으나 맛은 꽝이다. 기름을 꼭 짜낸 참치캔과 알 수 없는 곡물의 메인 요리. 빵과 버터마저도 모스크바 행보다 맛이 별로다. 치즈와 파란 봉지의 과자가 맛있었으니 봐주겠다. 3/7

아까 맥주는 괜히 마셨다. 골이 울린다.앞으로 두 시간 남짓 남았다. 다시 기절한다.

공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다함께 박수를 쳤다. 뭐지?
아무튼 감사하는건 좋은 거라며 나도 같이 쳤다. 수학여행 같네.

 

 

#2_2. 날 들여보내주오 제발

 

도착하면 할 일 : 입국 비자 사기, 환전하기

(비몽사몽 간에 내려서 그런가 도착 사진이 없다)

기도가 통해서일까 다행히 짐은 어디 가지 않고 제대로 제시간에 나왔다.

짐을 찾으면 가장 먼저 도착 비자 구입부터 해야 한다. 짐 찾는 곳 근처에 은행 창구가 두 군데 있는데, 어느 쪽이나 상관없이 구매가 가능한 듯했다. 우리는 어버버버하다 왼쪽의 붉은색 간판(!)에서 비자를 구매하고 오른쪽의 녹색 간판(!!)에서 미리 인천공항에서 환전해간 달러를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했다.

 

비자 구매 비용 : 25달러
달러 > 이집트 파운드 환전 : 기억나지 않음 - 시세 나쁘지 않았음(사실 몰랐음)

 

[J]

이집트에선 하도 사기를 많이 친다는 얘기가 있어
이거 환전도 사기아냐? 싶어서 계산을 둘이서 대충 해본결과
사기는 아니었다라는 결론..

아무리 그래도 공항 환전소에서는 사기 안 치는구나 라는 결론

 

이집트 도착 비자. 스티커를 주면 알아서 붙여야 한다

예쁘게 붙혀보겠다고 용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테두리를 안 떼고 전부 다 붙여버렸다.

 

ㅗㅜㅑ

환전도 했고, 비자도 샀으니 입국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어디에도 펜이 없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게 없으니 한참을 당황하다 결국 근처를 지나가던 콧수염이 멋진 공항 직원에게 펜을 빌려서 근근이 작성했다. 펜,,, 펜을 꼭 챙기십시오.

 

새벽인데도 입국심사장에 사람이 정말 매우 무지막지하게 많다. 타들어가는(빨리 쉬고 싶은)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의 손은 느긋하기만 하다.

 

헬로 카이로 에어포트!

한참을 걸려 나온 입국 심사장. 금박이 번쩍번쩍 피라미드가 반겨줄거라고 혼자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평범해서 실망했다. 실망은 실망이고, 빨리 다음 일을 해야 한다.

 

 

#2_3. 이집트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우리는 로밍 대신 이집트 유심칩을 구매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모두 통신사 쪽으로 달려가니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여러 통신사가 있었는데 우리는 보다폰을 선택했다.

 

통신의 요정 지니...?

인터넷 10기가 + 통화 ?분 : 250 파운드

기왕 하는 거 그냥 걱정 없이 넉넉하게 쓰기 위해 10기가짜리로 골랐다. 통화야 어차피 이집트 국내 전화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3G다. 아 이런 속도로 인터넷을 했었지... 5G가 벌써 그립다.

 

이게 된건지 아닌건지 나는 모르겠소이다

뭔가 뜨긴 뜨는 걸 보니 연결은 제대로 된 모양인데, 자꾸 아랍어로 문자와 경고문이 뜨니 괜히 불안하다.

네이버가 들어가지니 인터넷은 연결되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유심칩도 샀겠다 이제 숙소로 갈 시간이다.

 

보통은 공항 앞의 택시 삐끼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첫날+새벽 도착(0035)이니 아예 공항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소를 선택했다.

3 Pyramids View Inn
\ 42,768
기자 피라미드 근처
싱글 2개, 무료 조식, 공항 픽업 서비스 무료

 

도착은 0035라고 했으나 공항에서 나온 건 0140 정도. 최소 한 시간 반을 기다렸을 드라이버는 약간은 지친 표정으로 우릴 차량으로 안내했다.

 

여기 정말 카이로 맞아?

공항에서 숙소까진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다. 차를 타고서도 50분 정도를 더 가서야 숙소에 도착. 

 

크고 깨끗했던 방

 

이때는 몰랐지만 아주 훌륭했던 화장실

[J]

이 정도 화장실이면 거의 5성급. 들어가 자도 됨
앞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집트 각 관광지에 있는 화장실이란.. 매우 도전정신이 있어야 시도가능함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깨끗했다.

도착해서 간단히 씻고 나오니 벌써 시간은 0300. 아침부터 움직일 생각을 하면 빨리 자야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눈이 감기질 않는다.

 

약 14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지구 반대편의 낯선 나라, 이집트에 왔다.

내일은 가장 보고 싶었던 피라미드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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