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1. 고요한 모스크 오브 이븐 툴룬.

 

 

낯선 곳에 우리를 던져두고 가는 뒷모습

카이로 시내로 들어오자 좀 막히는 듯했고, 30분 정도를 달려 모스크에 도착했다.

정상 가격은 21파운드였지만 피크타임이라 2배를 받아 42파운드를 계산했다.

기사와 가격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를 손짓 발짓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우버.

카이로에서 여행한다면 우버는 절대 필수다. 진짜로. 정말로.

 

아무튼 이게 입구

별다른 안내 표지판도 없지만 구글 지도를 보면 맞게 도착은 한 것 같다. 입구라고 붙어있는 곳 역시 없지만 검색대가 있는 걸 보니 저게 입구인가 하고 다가가니 검색대를 통과하라는 이집션들.

간단한 검색을 마치고 입구를 통과하자 저쪽에서 노인이 이리 오라며 손짓한다.

내부에선 무조건 차야한다며 발싸개를 써야 한단다. 천 주머니나 비닐 중에 고르라는데 재활용할 것도 아니니 비닐을 고르자 아뿔싸, 또 박시시를 요구한다. 이번에는 발싸개 값과 신전을 위한 기부란다.

내지 않으면 붙잡고 보내주지 않을 기세라 발싸개 값으로 5, 기부금으로 10을 냈다. 기부금이 너무 작은 것 아니냐며 구시렁거리는데 무시하고 뒤돌아섰다.

 

고요하고 뜨거운 내부

넓은 안 뜰을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던 때라 우선은 회랑을 돌아보기로 했다.

 

긴 회랑

긴 복도에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외부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복도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본다.

 

조용히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정화되는 기분

 

떼어오고 싶었던 화려한 문양들

줄지어 이어진 아치에는 서로 다른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관리의 탓인지 세월의 탓인지 완전히 지워진 곳도 있고, 아직 빼곡하게 들어찬 곳도 있다.

9세기에 지어진 모스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남아있는 것 또한 기적에 가깝다.

 

가운데에 있던 의문의 건물

안 뜰 가운데 있는 건물도 가본다.

 

부서진 플라스틱 의자만 덩그러니

 

저 멀리 보이는 미나렛

 

올라가면 카이로 시내가 보인다던데....

4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태양빛에 차마 저 멀리 보이는 미나렛은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두어 바퀴 둘러본 후 다시 길을 나섰다.

 

물까봐 무서웠다

입구엔 들개들이 서성인다.

놀랍게도 여기가 카이로 최고(最古)의 모스크 입구가 맞다.

 

 

#5_2. 광란의 툭툭이.

 

 

거창했던 원래 계획

구경을 마쳤으니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다음 목표는 파란색 타일이 아름답다는 블루 모스크.

"걸어서" 모스크 오브 이븐 툴룬에서 출발 > 블루 모스크를 들러 구경 > 길을 쭉 따라 올라가 즈웰라 문 도착이라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으나, 여행 첫날+더위+생각보다 무거운 짐 콤보로 포기하고 우리 친구 우버를 다시 한번 타기로 했다.

 

누가 봐도 동양인 관광객

하지만 짧은 거리 탓인지, 기사가 없는 건지 우버는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간신히 잡은 우버는 근처까지 와서 주위를 계속 빙빙 돌기만 했고(취소 수수료를 뜯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취소 후 다시 잡은 우버는 우리를 지나쳐(ㅋㅋㅋ) 다른 골목으로 가버렸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이집트 여행 통틀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야 이럴 거면 걍 툭툭이 잡아서 타고 가자"

 

계속 잡히지도 않고 지나가는 우버에 지치기도 했고, 우릴 놀리듯 연달아서 지나가는 빈 툭툭이들에 혹한 것도 있었다.

결정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앞에 나타난 툭툭이를 타고 기사에게 구글 지도와 가이드북을 보여주며 블루 모스크를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기사, 심상치 않다.

탄다니까 태우긴 했는데 이 동양인들이 뭐라는 건지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 더니, 지나가던 다른 이집션을 붙잡고 얘네 뭐라고 하는 거냐고 물어본다. 붙잡힌 이집션 아저씨는 우리 설명을 듣고는 다시 뭐라 뭐라 뭐라 기사에게 전해줬다.

 

"아 오케이 마이 프렌드"

자신 있게 출발한 툭툭이는 거침없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타본 툭툭이, 최대 볼륨으로 터지는 묘한 이집트 노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이게 낭만이지...라고 생각했다.

 

오빠 달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여자가 지나가면 전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질 않나,

좁디좁은 시장 골목을 가로지르더니 중간에 멈춰서 담배를 사질 않나,

구글 지도를 켜놓은 우릴 보더니 자기가 지도보다 정확하다며 소리를 지르질 않나(놀랍게도 아랍어인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 이건 낭만이 아닌데

 

광란의 질주가 끝나고 간신히 도착한 곳은 아무리 봐도 블루 모스크가 아니라 즈웰라 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데려다 달라고 하기엔 도저히 이놈 뒤에 타고 갈 자신이 없어서 그냥 땡큐 땡큐 하고 내렸다.

그러자 손가락 두 개를 펴며 손을 벌리는 이 청년.

아뿔싸, 타기 전에 가격 얘기를 안 했다.

(솔직히 쫄았던) 우리는 20파운드를 또 뜯겼다.

 

[J]

이게 영상으로 보면 안전운전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이게 어떻게 사고 안나냐 싶을 정도

이 운전자 친구의 약 빤 것 같은 운전실력 (+정신상태)이면
중간중간 피우던 것이 대마가 아닐까 싶다

 

 

#5_3.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2.

 

 

ㅎㅇ

우여곡절 끝에 즈웰라 문에 도착하긴 했는데... 여기도 유명하긴 하지만 가이드북에서 봤던 하얗고 새파란색의 타일이 아른거려 나는 한번 더 J에게 걸어서 가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멀진 않으니 한번 가보자고.

그런 우리에게 웬 노인이 말을 걸어온다.

 

"헬로 마이 프렌드! 어딜 가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린 알아서 갈 길 갈 거다" 

"(버럭) 너희가 많이 속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모든 이집션이 나쁜 건 아니야, 나는 굿 이집션이라고!"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여기 즈웰라 문에서 일하는 기술자(technician)야. 너흰 어딜 가려는 거니?"

"어...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정말 아름답지, 여기서 가까운데 내가 데려다줄게"

"아냐 그냥 우리가 알아서 갈 거다. 길 다 안다"

"오... 너희 정말 많이 당했구나 하지만 진짜 걱정 마, 나는 여기서 일하는 기술자고, 굿 이집션이야. 내가 데려다줄게"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앞장서는 이집션.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은데 지가 데려다준다는데 어쩌겠냐며 일단 따라가기로 한다.

 

"마이 프렌드, 여긴 학교고 저긴 뭐하는 데고, ##$$%#@#$@#$%^&"

가는 동안 보이는 건물들을 설명해주는 자칭 굿 이집션 기술자와 함께 블루 모스크에 도착했다.

 

당황해서 사진도 못찍었다. 떙스 투 구글

"마이 프렌드, 너희 학생증 있니? 여긴 학생증 받으면 학생 요금 100파운드(!)로 할인받을 수 있어"

"매표소도 없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여기 입장료 없는 거 안다"

"너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가 여기 입장료 없다고 했어"

"가이드 북이랑 다 보고 왔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 가이드북이 오래돼서 잘못된 거다. 내가 여기 담당자 데려올게 기다려"

그러더니 저 구석에 누워서 자고 있던 다른 이집션을 툭툭 쳐서 깨우기 시작하는 이집트 기술자.

누가 봐도 사기꾼의 모습에 우린 내부 구경도 못하고 급하게 발길을 돌려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잊지 말자, 착한 이집션은 말을 걸지 않는다.

 

[J]

이것이 더블샷
툭툭이 친구한테 사기당하고 이 할아버지한테 사기당하고

이집트에서는 나이가 어리던 많던 상관없이 나한테 말 걸면 사기꾼이다

 

 

#5_4.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길. 그 와중에 물도 하나 샀다

사기꾼한테 이끌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즈웰라 문으로 돌아간다.

그 와중에 슈퍼에 들어가 생수도 한통 사는 용기까지. 

 

ㅎㅇ 또왔니

다시 즈웰라 문까지 오긴 했는데, 모스크 내부를 보자니 안에서 한창 기도 중인 것 같았다.

우리는 한참을 서성이다 배가 고프니 밥이라도 먹으러 가기로 결정하고 구글에 급하게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뭐라는건지 설명하시오(3점)

여차저차 평점이 나쁘지 않은 가게를 찾고 구글신께서 알려주는데로 길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건지 가는 길은 막혀있고, 돌아가는 길은 공사 중이고, 어떤 곳은 경찰이 막고 있고...

사기꾼을 만나고 길까지 잃어버리는 연속 콤보에 패닉이 와버린 우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람세스 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시간은 16시.. 기차 시간은 20시... 될 대로 되라지

 

치열했던(?) 그날의 동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우버를 불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금방 우버가 잡혔고 15분 정도를 달려 람세스 역에 도착했다. 

 

 

#5_5. 람세스 역.

 

 

크고 화려한 람세스역

람세스 역 내부는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가는 야간 침대열차는 한국에서 미리 예매를 해놨기 때문에 따로 표를 구입할 필요는 없었지만, 출발 시간은 아직 3시간은 더 남았기 때문에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아야 했다.

 

2층의 카페테리아

내부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큰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일단 여기서 뭐라도 먹고 가기로 결정했다.

 

뭔가 많이 먹음

배가 고파서

 

많이 먹음 뭔가

많이 시켰다.

 

Hot cide와 Seasonal Juice

 

3시간 동안 죽치고 먹은 것들

 

각각의 가격은 저렴했었는데 이렇게 시키고 나니 260파운드가 넘었다.

그래도 알음알음 쌓여있던 여행 첫 날의 긴장감이 싹 날아가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신 이집션 사기꾼들에게 속지 말자며 우리끼리 다짐하고, 받아온 한게임 맞고(!)를 하며 침대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J]

사실 카톡에다 먹은 메뉴랑 가격 써놓은게 
음식점에서도 사기 당할까봐 나중에 계산서랑 대조해보기 위해 기록해둠ㅋㅋㅋㅋㅋㅋ

실제로 대조해보니 계산서랑 달랐는데 따져보니 결론은 팁 포함!

 

1 EGP (이집트파운드) = 75원 

 

람세스 기차역 플랫폼

기차 시간이 다 되어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우리가 먼저 말을 건) 청소 직원의 도움으로 우리가 탈 기차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 침대 기차가 비슷한 시간에 차례대로 두 개가 출발한다. 우리가 타는 건 두 번째 열차였는데, 하마터면 앞에 걸 탈 뻔했다.

** 침대 기차는 외국인 전용인지 기차 입구를 직원이 막아서고 있다. 애매하다 싶으면 직원이 이집션들은 타지 못하게 제지하는 게 침대 기차라고 봐도 될 듯.

 

 

낭만 그 자체, 침대기차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가는 건 총 3가지 방법이 있다.

1. 비행기

2. 침대 기차

3. 일반 기차

차례대로 비용은 저렴해지나 시간은 오래 걸린다.

늙고 병든 직장인 2명은 침대 기차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침대 기차를 타보겠나, 이 또한 낭만이었다.

 

출발 후 조금 기다리니 직원이 와서 1층 의자를 침대로 바꿔주고,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침대기차 저녁식사

예매할 때 옵션에서 Beef, Chicken 고르는 게 있더라니 식사 메인 메뉴를 고르는 거였나 보다.

내가 시킨 Beef는 묘하게 유사 갈비찜 맛이 났다. 나쁘지 않았다.

 

카이로를 20시에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 룩소르에 새벽 6시에 도착한다.

자기 전, 미리 예약한 룩소르 투어 가이드 "지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W님, 어디 호텔에서 출발하시죠?"

"저희는 카이로에서 지금 침대 기차 타고 가고 있습니다. 도착시간 6시라고 나오더라구요"

"아ㅎㅎㅎ 그런데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연착이 당연합니다"

"정시 도착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구요, 예전에 두 시간 정도 늦으셨던 분도 계셨어요"

"제가 7시까지 카이로 역으로 가긴 할 텐데, 혹시 연착돼서 늦으시면 투어 장소까진 알아서 오셔야 합니다"

"제가 정시 도착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드리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유창한 한국어로 굉장히 무서운 말을 하고 끊은 지성.

 

심란한 밤이 될 것 같다

낭만 같아 보였던 창문의 커다란 깨진 자국이 갑자기 심란하다.

 

찾지도 않던 신에게 나도 기도해본다.

제발, 빠른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도착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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